2021년 이용주 감독이 연출한 한국 SF 스릴러 영화 '서복'은 유전공학으로 탄생한 복제 인간을 중심으로, 시각적으로도 인상 깊고 지적으로도 자극적인 서사를 통해 인간 복제의 윤리적 복잡성을 파고든다. 영화는 불멸의 열쇠를 지닌 유전적으로 설계된 복제 인간 ‘서복’을 중심으로 펼쳐지며, 오늘날 급속도로 발전하는 생명공학 시대에 더욱 시의적절한 생명 윤리적 질문들을 던진다. 이 영화는 액션과 감정이 뒤섞인 드라마로도 훌륭하지만, 그 진정한 강점은 관객의 사고를 자극하는 윤리적 딜레마에 있다. 우리는 실험실에서 생명을 창조할 수 있을까? 복제된 존재도 자연적으로 태어난 인간과 같은 권리를 누릴 수 있을까? 인간 생명을 두고 과학이 어디까지 나아가야 할까?
복제 인간의 권리: 복제 인간도 진정한 사람인가?
‘서복’에서 가장 인상 깊은 주제 중 하나는 복제 인간이 독립적인 존재로서 인정을 받을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영화 속 서복은 단순한 복제품이 아니다. 그는 지능이 높고, 감정이 있으며, 내면적으로 깊은 고민을 하는 존재로 묘사된다. 이러한 표현은 자연적 생명과 인공적 생명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며, 우리가 사람됨을 정의하는 방식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이는 현실에서도 매우 중요한 윤리적 쟁점이다. 생명윤리학에서 인격이란 인지 능력, 자기 인식, 고통과 기쁨을 느낄 수 있는 능력 등을 기준으로 판단된다. 만약 서복이 이러한 특성을 모두 지녔다면, 그를 소유물이나 자원으로 취급하는 것이 과연 도덕적으로 정당한가? 영화는 서복이 단지 도구처럼 여겨지는 현실을 비판한다. 과학자들과 군은 그를 "자산"이라 부르며, 독립된 인격체로 인정하지 않는다. 이는 역사 속, 혹은 현재에도 존재하는 인권 침해 사례와 유사하다. 권력과 통제를 위해 특정 집단의 인간성을 무시해 온 사례들 말이다. 서복에게 목소리와 감정, 욕망을 부여함으로써, 영화는 관객에게 복제 기술이 단순한 과학의 진보가 아닌, 인류의 도덕적 성숙도를 시험하는 문제임을 일깨운다.
목적을 위한 생명 창조: 과학 발전은 정당한 명분인가?
‘서복’ 속 또 하나의 윤리적 질문은 그 존재의 목적에 관한 것이다. 서복의 세포는 재생 능력을 지니고 있어, 모든 질병을 치료하고 인간의 생명을 무한히 연장할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이러한 기대 뒤에는 불편한 진실이 숨겨져 있다. 그는 인간을 위한 ‘도구’로 창조되었고, 이 목적이 그 존재 이유의 전부라는 것이다. 이것은 실제 생명윤리 논쟁과도 깊게 맞닿아 있다. 치료용 복제와 같이 인간 배아를 생성해 연구에 사용하는 행위는 생명을 단순한 수단으로 여기는 것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서복의 존재는 이런 도구적 철학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는 살아가기 위해가 아니라, 치료하기 위해 창조되었다. 세상을 경험하기 위해가 아니라, 타인의 삶을 향상시키기 위해 존재한다. 자신의 존재 의미에 대한 내면의 갈등은, 자율권을 박탈당한 존재가 겪는 정신적·도덕적 고통을 반영한다. 또한 영화는 관객에게 질문을 던진다. 과연 인간이 불멸이나 완전한 건강을 추구하기 위해 도덕적 경계를 넘는 것이 정당한가? 생명을 제품처럼 보고 설계·통제·폐기 가능한 대상으로 인식하게 될 경우, 우리의 윤리적 나침반은 어떻게 되는가?
진화를 조작하는 인간: 우리는 미래를 설계할 자격이 있는가?
‘서복’이 던지는 세 번째 윤리적 질문은 철학적이면서도 깊은 문제다. 바로, 인간이 스스로의 진화를 통제할 자격이 있는가에 대한 것이다. 영화 속 서복은 단순한 복제가 아니라 유전적으로 강화된 존재다. 그는 재생 능력을 지니고 있으며, 질병에 면역이 있고, 지능 또한 인간보다 우수하다. 즉, ‘다음 세대 인간’으로 설계된 존재다. 이 주제는 실제 유전자 편집 기술의 발전과 밀접하게 연결된다. 이미 CRISPR 같은 기술로 인간 배아의 유전자 편집이 가능해졌고, 특정 특성을 지닌 인간을 ‘설계’하는 일은 더 이상 공상 과학이 아니다. 그러나 "가능하다"는 것과 "해야 한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완벽한 인간’이라는 개념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다양성과 예측 불가능성, 불완전함의 가치를 약화시킨다. 또한 이는 사회적·정치적 불균형을 야기할 수 있다. 만약 일부 인간이 유전적으로 ‘우월’하다면, 이는 사회적 계층, 기회, 평등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영화는 서복을 고립된 존재, 두려움의 대상, 결국 제거의 대상으로 그린다. 그는 악해서가 아니라, 다르기 때문에 위협으로 인식된다. 이 내러티브는 우리 사회가 ‘정상’이라는 기준을 도전하는 존재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지를 묻는다. 유전적으로 우수한 인간은 과연 존중받을까, 아니면 배척당할까? 영화는 명확한 해답을 제시하지 않지만, 진화를 조작하는 일이 단순한 과학적 행위가 아니라 도덕적 결정임을 분명히 한다. 그리고 이 결정이 가져올 결과에 인류가 과연 대비되어 있는지 되묻는다.
결론: 스크린 너머로 울리는 서복의 윤리적 메아리
‘서복’은 본질적으로 현대 과학의 윤리적 경계를 경고하는 이야기다. 첨단 실험실, 정부의 음모, 생사를 건 추격전이 등장하지만, 이 영화의 진정한 초점은 인간적 질문에 있다.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가? 우리가 창조한 생명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과학은 도덕 없이 존재할 수 있는가? 서복이 실험 대상에서 자율적 존재로 거듭나는 여정은, 과학적 야망 뒤에 숨겨진 인간의 대가를 되돌아보게 한다. 영화는 과학의 진보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윤리 없이 추구될 때 발생할 수 있는 위기를 경고한다. 복제, 유전자 조작, 생명 연장이 더 이상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닌 지금 이 순간에도 가능한 현실이 된 지금, ‘서복’은 시기적절한 통찰을 제공한다. 이 영화는 우리가 어떤 미래를 만들 수 있는지가 아니라, 어떤 미래를 만들어야 하는지를 되묻는다. 과학이 절대 넘지 말아야 할 윤리적 한계는 어디라고 생각하시나요? 아래 댓글에서 여러분의 생각을 공유해 주세요.